[책과 삶] ‘가부장의 폭력’...그때는 정말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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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꽃 작성일24-05-31 20:14 조회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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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해로외전|
박민정 지음 |문학동네|316쪽 |1만6500원
대학교수인 ‘나’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느닷없이 사촌 새언니를 한 번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촌 새언니는 큰아버지의 며느리로, ‘나’는 사촌오빠 장훈과 그의 결혼식 이후로 연락 한번 한 적 없는 사이다. 아버지는 사촌 새언니가 지방대 교수로 임용됐으니 도와줄 일이 있는지 연락해 보라고 한다. 학교 일에 치여 여유가 없었고 어린 시절 큰아버지네 집에 얹혀살았던 기억이 떠올라 피하고 싶었지만 ‘나’는 사촌 새언니를 만나러 간다. 결혼 이주 여성인 그가 결혼식 날 시아버지인 큰아버지를 비롯해 내가 싫어하는 친척들에게 무시를 받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촌 새언니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나’는 뜻밖의 인물들과 만나게 되고, 큰아버지네의 비극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외전은 본편에 빠진 부분을 따로 다룬 작품을 뜻한다. 박민정 작가의 장편소설 <백년해로외전>은 부부가 인연을 맺어 평생을 즐겁게 같이 보낸다는 백년해로, 그 이면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백년해로’라는 낡은 본편 뒤에 숨겨진 가부장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다루며 오직 ‘혈연’이라는 이유로 맺어진 관계들이 만든 상처에 대해 말한다.
‘나’는 사촌 새언니와의 만남 이후 사촌 조카 ‘수아’와 가까워지게 된다. ‘수아’는 ‘나’에게 입양을 간 프랑스 고모 ‘야엘(장선)’과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몇 년 전, 동생 ‘장훈’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야엘’과 짧게 만난 적이 있던 ‘나’는 ‘수아’를 통해 다시 ‘야엘’과 재회하게 된다.
할머니의 지독한 장남 중심주의 하에서 기꺼이 그 지위를 누리며 살았던 큰아버지는 1983년 두 딸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혼 후 ‘새장가’를 들기 위해서다. 큰아버지에게는 장선, 장희, 장훈 삼 남매가 있었다. 자식 셋을 돌보는 일은 오로지 할머니의 몫이었고, 큰아버지는 육아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손자인 장훈을 제외한 손녀 장선, 장희가 장남의 재혼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손녀들을 맡아 키울 사람을 물색한다. 처음에는 딸인 큰고모에게 시집가지 말고 오빠의 딸들을 맡아 키우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오빠와 차별받으며 자라 이에 대한 불만이 깊었던 큰고모는 크게 분노하며 단칼에 거절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신혼이던 둘째 아들 내외, ‘나’의 아빠와 엄마를 슬쩍 떠본다. ‘나’의 부모도 두 손녀를 맡겠다고 나서지 않자, 할머니는 두 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내기로 한다. 물론 큰아버지의 뜻이기도 했다.
장선과 장희가 가부장의 쓸모에 따라 가차 없이 버려졌듯이, 큰아버지를 정점으로 한 위계질서 속에서 그 말단에 있는 ‘여자’와 ‘아이들’은 존중받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면서 어린 시절 큰아버지네 집에서 6개월 남짓 얹혀살았던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에게는 손자 ‘장훈’을 제외한 손녀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어린 ‘나’는 밤마다 기도했다. 깨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던 날이 생각났다. 큰고모에게 따귀를 얻어맞았던 날이나 할머니에게 욕을 먹었던 날이나 할머니가 엄마에게 욕하는 걸 봤던 날, 나는 깨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잠들었다. 큰아버지네 집에서 더부살이하던 작은 고모와 그의 딸 수진의 처지 또한 비슷했다. 작은고모는 큰아버지네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지만, 다른 방이 남아도 그들은 부엌에 딸린 작은 ‘식모 방’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다고 장손인 장훈이 평안했던 것도 아니었다. 큰아버지는 바지의 혁대를 풀어 채찍처럼 그에게 휘두르곤 했고, 어린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작품은 ‘가족 이야기’를 한 축으로 하면서 ‘나’의 직장인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또 다른 한 축으로 다룬다. 어렵게 전임 교수로 임용됐으나 학생들이 나의 수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나’의 학교생활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동료 교수 서정수는 한 학생과 함께 교수회의에서 ‘나’를 모함하기까지 한다. 학교에서의 사건은 ‘가족 이야기’와 중첩돼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를 소환하거나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한다. ‘나’는 그 또한 가부장제의 희생자이면서 어린 조카들에게 막말과 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큰고모’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에게 받은 상처로 그들에게 경계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사촌 조카인 ‘수아’를 대할 때도 이런 이중적인 감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수아가 어른들 앞에서 참람한 짓거리를 일삼는 학생들과 겹쳐 보이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풀 죽어 있던 나와 겹쳐 보인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할 수 없었는데 너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좋다고 생각했다. 눈치를 보지 않는 수아가 언뜻 나와 같다고 생각하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지만 학생들 같다고 생각하면 거슬렀다. 두 개의 상반된 마음 모두 내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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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대변하는 세대 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태어난 이들은, 한편에서는 산업화와 근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근대의 악습이 뿌리 깊이 남아 있던 1980년대 성장했다. 여전히 맹목적인 가부장제, 장남 중심주의가 횡행했던 시기였고 아이들은 위계질서의 말단에서 집안의 부속품처럼 여겨졌다. 아이들에 대한 언어적 폭력은 물론 물리적 폭력도 대체로 용인되던 시기였다. ‘나’는 만약 추하게 늙어간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에 대해 말하라면 큰아버지를 예로 들어 하루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하며 부모 세대가 보편적으로 가진 전근대적 습속에 대해 시사한다. 그러면서 ‘나’는 장선과 장희가 김포공항을 떠나던 날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이미지는 비단 1983년의 장선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언젠가 나도 버려지지 않을까 싶었던 두려움, 갓난아기인 수진 언니를 그런 식으로 버릴까 봐 전전긍긍했던 엄마의 두려움은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대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했다라며 당시의 시대상을 전한다.
한 가족의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는 결국 당대의 구조 속에서 파생됐다. 그 구조가 가족 내 가장 취약한 어린아이들에게 남긴 상흔은 그 세대의 공통감각으로 남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내가 1980년대의 그 어른들을 다소 닮아버렸다고 해서 이대로 주저앉지만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다시, 그래도 조금은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이렇게 쓰고 있다라고 말한다.